나의 롤토체스 답사기

레위기 10장 묵상 본문

성경공부

레위기 10장 묵상

롤체방송애청자 2024. 1. 29. 00:32
반응형

직장을 춘천으로 이직하면서 새로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에서는 성경통독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금 성경을 읽어보니 역시나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오래 기억하고자 블로그에 써보기로 했다.

 

나에겐 주님께서 환상이나 기적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릴때부터 책 읽는것과 글쓰기는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거부감이 없었는데

읽다보면 뭔가 마음 한구석에 박히는 구절들이 있다. 

그리고 그 구절들은 일상생활에서 힘이되고 기도할때 사용하기도 하며,

좀 더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

아마 주님께서는 나에게 말씀으로 대화하시려고 하나보다. 

 

오늘은 레위기 7~10장을 읽었는데 10장3절의 말씀이 나에게 와닿았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내가 이 구절에서 깊게 느낀부분은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자'라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까이 하는자에게 거룩함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구하라 구할것이요 두드리라 열릴것이라고 했다. 

그 구절의 끝맺음은 '내게 부르짖으라'였다. 

한마디로, 주님께 가까이하는 열심이 있어야만 주님의 거룩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열심이 없다. 

여기 교회에서는 하루 1시간씩 기도하자는 매우 바람직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나는 도무지 1시간을 기도하는게 참 힘들다. 

기도는 고사하고 내 마음에 주를 믿는 기쁨과 삶에 대한 기쁨조차 없다.

그러하니 어찌 주님께서 내게 환상과 이적을 보이시며 나타내시겠는가.

오늘도 사도교육까지 하고 싶었으나 기도중에 도저히 피곤해서 집에왔다.

오자마자 씻고 낮잠을 4시간이나 잤다.

그렇다가 내가 어제 늦게 잔것도 아닌데도 그렇게나 졸리더라.

자고나서 생각했다. 아... 예수님께서도 산상기도후에 내려오셨을때

제자들이 자고 있는걸 보고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신 안타까움..

나도 별반 다를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장의 내용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내용이다.

죽은 이유는 1절,2절에 나와있다.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화 앞에 분향하였더니
2절 불이 여호화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화 앞에서 죽은지라

 

다른 불??? 불에도 종류가 있나?? 

주석을 보니 이 부분의 히브리어 원문은 '이상한' 또는 '이국적인' 이라고 한다.

즉 예배를 위해 허용된 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곳을 불을 향로에 담아 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곳이란 우상 숭배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고대 유대교 해석에서는 이 부분을 나답과 아비후가 취해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정황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닌것은 분명하다.

결론은 그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 뭐 성경에 주님 말씀 안듣고 죽은사람 한둘인가.

근대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아들이다.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니 모세에게 나답과 아비후는 조카가 된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산에서 모세와 70인의 장로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단칼에 죽었다. 

그리고 10장 뒷부분에 속죄제물을 먹지 않고 불에 태운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모세는 화를 낸다.

그리고 아론은 말하기를, 

19절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속죄제를 드렸음에도 아들이 둘이나 죽었는데

속죄제의 마무리인 음식먹기를 하는 것이 과연 속죄가 된 것인가..

 

두번째는, 아버지로써의 슬픔을 애써 억누른 표현일 것이다. 

 

나는 아론의 슬픔에 더 공감이 갔다.

부모는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식의 죽음은 더 큰 슬픔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론은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으로 인해, 그리고 아들들의 죄가 너무나 명백하기에

차마 슬퍼할 수 없었다. 

모세마저도 시체를 들고 진영 밖으로 가라고 말한 사촌동생들에게

옷을 찢거나 머리를 뜯지 말라고 했다. 

고대 히브리민족에게 이런행위는 애통하는 행위인데..

이걸 하지말라는건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영밖으로 두고 다만 백성들만이 여호와의 불로 죽음을 슬퍼하라고 했다.

회막안에 있는 제사장의 직분 맡은 사람은 슬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수도 없는 삶.....

참으로 가혹하지 않는가.. 

물론 죄를 지은건 맞지만 인간에게 감정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시고

자유의지를 주신분도 하나님이시거늘,

 

그날 밤 아론은 자기전에 주님께 무엇이라 기도했을까.

눈물 한방울 없이 평소처럼 대제사장으로써 기도할 수 있었을까.

소제의 고운가루를 먹을 때마다 죽은 아들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속죄제의 고기를 먹을 때마다 죽은 아들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매일 아침 대제사장의 복식을 입을 때마다 죽은 아들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