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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민수기 14장_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롤체방송애청자 2024. 2. 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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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장의 흐름은 이렇다.

백성의 원망->주님의 분노->모세의 중보기도->주님의 징계와 자비.

그리고 결론은 항상 그렇듯이,

주님께 순종하자.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그리고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은 이 장에서도 성립된다.

성경은 매번 지루하리만치 이런 패턴들이 많다. 

 

출애굽기부터 시작되는 애굽탈출과 가나안 정착까지의 여정을 보면,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답답하리만치 묘사되어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사람들보다 직접 경험했다.

현대에도 수많은 환상과 이적들을 주님만난 체험으로 간증하지만,

그 어느 간증도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생생할 수는 없다.

그들은 문설주에 바른 피로 장자의 죽음을 넘겼고,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도 보았으며,

본 것으로도 부족해서 직접 바다의 바닥을 밟고 건너는 체험을 한다.

낮에는 살인적인 더워, 밤에는 살인적인 추위가 반복되는 사막에서,

그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와 더위를 살펴주시는 주님을 경험했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면 만나를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징징되면 메추라기를 주셨다.

물없다고 징징대니 반석에서 물도 주셨다. 

나일강이 한순간에 피로 물든 것도 보았고,

개구리며 메뚜기며 별 희한한 일을 다 보았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그들은 차라리 생선,오이,참외,파,마늘을 공짜로 먹던 애굽 종살이를 더 좋아했다. 

이제 가나안땅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그땅 사람들을 정탐하고 안될 것 같으니

또 애굽으로 가자고 징징거린다. 내가 보기에도 좀 적당히해야지 싶은 생각이 든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셨나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 14:11

그리하여 원망하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를 뺑뺑이돌린다.

그 자손들과 더불어 갈렙과 여호수아만 들어갈거라고 말씀하신다.

한편으로는 좀 허무했다. 애써 빼왔더니 결국 광야에서 뺑뺑이 돌다가 죽을 처지라면,

이스라엘 백성들 말대로 차라리 애굽에 있는게 더 나은 선택이긴하다.

마치 가롯유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의 내막을 모른채 결과만 듣는다면 애굽에서는 코웃음을 치며 유대인의 신도 별거없구나 생각할것이다.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와 그것이 축복인 이유>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았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사실 애초에 인간이 죄를 짓지 않게끔 설계하면 장땡이다.

하나님을 향한 온갖 불평불만???

애초부터 신에게 불만을 가질 수 없도록 뇌를 세팅해서 창조하면 장땡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심지어 창세기 6:7 에서도 나왔다시피 인간을 만들고 '한탄'하셨다고 했다.

한탄이라..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후회는 결과에 대해서 모르고 한 일에 대해 나중에 내리는 평가이자 결론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을까??? 

그건 모순이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물론 들짐승들도, 곤충들도, 물고기들도 지들 맘가는데로 행동하는 건 같다.

하지만 본능대로 생존자체를 위해 움직이며 사는것과,

생존 그 이상을 '생각'하며 '판단'해서 더 좋은 안을 '결정'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과 다르게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유일하게 받은 능력이라면 이것은 선물이요 축복이 맞다.

말그대로 인간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그럼 왜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처럼 인간은 개또라이 새끼들이라서 

그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또라이새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온갖 이적을 보여주시고,

여러 제사들의 방법과 성막의 규격등등 알려주시며 어떻게든 하나님 자신을 경배하라고 알려주신다.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훈육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굳이 우리 인간이 스스로 알아서 경배하는걸 좋아하실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천사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천사 이름 자체가 한문으로 하늘 천, 부릴 사. 즉, 하늘에서 부리는존재이다.

천국이 회사라면 사장은 하나님이고 천사는 직원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주님의 자녀 즉, 사장님 아들이다. 애초에 급이 다르다. 

그리고 사장아들이 가업을 승계하려면 당연히 아버지의 일을 배워야 한다.

그런 배움과 노력과 희생없이 누리기만 하고싶다면

결국 일부 재벌3세처럼 마약이나 하다가 인생 낭비하고 가업에서도 퇴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 사람으로써의 선한 영향력을 뿜뿜해야 한다.

신에 대한 자발적인 경배는 여기서 기본사항이 된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신앙생활은

그저 내 삶에서 눈에 보이는 유익만을 구하는 기복신앙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는 출애굽 이후 지속적인 징징거림을 보여주는

이스라엘 민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광야생활도 두려움이 없어야 맞다.

아말렉이든 아낙 거인이든 두려움이 없어야 맞다.

바다도 갈라버리고 사막 한가운데 60만명이 보일 정도로 불기둥을 뿜어올리는 존재가

지켜준다고 하는데 뭐가 문젠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거두지 않고 

어떻게든 끌고 가신다. 왜?? 하나님에게 우리 인간은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이후에도 

여러 이적들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지켜주심을 증명해주신다.

그렇게나 인간에게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또 , 계속, 여전히, 

그리고 결국엔 2000년이나 참으시다가 독생자마저 내어주시며 극한의 아가페를 보여주신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점 >

애굽은 세상으로, 가나안을 천국으로, 광야생활은 신앙생활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때로는 진짜 못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꾸만 다시 애굽(세상)으로 돌아가고만 싶어한다.

그동안 받은 하나님 사랑은 언제 그랬냐는듯 새빨갛게 잊어버리고 또 돌아가고 싶어한다.

깨지지 못한 육신의 내가 아직도 사망의 그늘처럼 발목을 잡고 계속 돌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크게 낙심할 건 없을 것 같다.

천하의 모세도 나 못해먹겠으니 다 필요없고 그냥 죽이세요라고 기도한걸 보면

무지렁뱅이같은 우리의 약한 믿음에서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하나님을 믿고 따를 뿐이다.

자신을 믿고 따르길 원하는 그분에게 하루하루 조금 더 다가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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